[러시아]**1. 뿌리 깊은 용맹함 – 초기 루스 (9세기 - 13세기)**


러시아(CIS) 문화/역사

글쓴이 : 학습M | 작성일 : 2025.11.04 17:05
업데이트 : 2025.11.04 17:05

[러시아]**1. 뿌리 깊은 용맹함 – 초기 루스 (9세기 - 13세기)**

안녕하세요! 오늘 저녁의 러시아 역사 이야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러시아의 역사 중에서 군사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배운 내용을 내일도 기억해 보세요.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와 혹독한 기후는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형성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군사'라는 요소가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군사사는 단순히 전쟁의 기록을 넘어, 민족의 생존과 정체성, 그리고 국가의 발전과 흥망성쇠를 담고 있는 거대한 서사입니다. 바이킹 전사들의 후예인 루스인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군사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 그리고 때로는 비극적인 희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간 여행을 통해 러시아 군사사의 주요 장면들을 함께 살펴보며, 그 속에서 러시아인들이 어떤 정신과 지혜로 역경을 헤쳐나왔는지, 그리고 그들의 군사적 유산이 오늘날 러시아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대의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오직 역사 속에서 빛나는 러시아 군사력의 발자취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

### **1. 뿌리 깊은 용맹함 – 초기 루스 (9세기 - 13세기)**

러시아 군사사의 첫 장은 북방에서 내려온 바이킹 전사들, 즉 '바랑인(Varangians)'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9세기경, 이들은 동슬라브 부족들이 살던 지역으로 진출하여 무역로를 개척하고, 점차 초기 국가 형태인 '루스'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의 군사력은 주로 부족 간의 분쟁이나 외부의 침략에 맞서는 방어적인 성격을 띠었습니다.

**드루지나(Druzhina)의 등장:** 루스 공국들의 군사력은 주로 공작을 중심으로 한 '드루지나'라는 기사단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이들은 공작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 시에는 선봉에 서서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드루지나는 단순한 전사 집단이 아니라, 공국의 행정과 외교에도 참여하는 중요한 엘리트 계층이었습니다. 이들은 창, 칼, 방패, 그리고 갑옷으로 무장했으며, 말을 타고 기동성 있는 전투를 벌였습니다.

**키예프 루스의 군사적 위상:** 드네프르 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키예프 루스는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동유럽의 강력한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과의 교류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문화적 전성기를 누렸지만, 동시에 남쪽의 유목민족, 특히 페체네그족과 폴로베츠족의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키예프 루스 공작들은 이러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 요새를 건설하고, 대규모 군사 작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군사적 경험은 훗날 러시아인들이 광활한 영토를 지키는 데 필요한 강인한 정신력과 실용적인 전술을 익히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

### **2. 몽골의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저항 (13세기 - 15세기)**

13세기 초, 동유럽에는 전례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바로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의 침략이었습니다. 1237년부터 1240년까지 몽골군은 루스 공국들을 차례로 유린하며 엄청난 파괴와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키예프와 같은 주요 도시들이 함락되고, 루스 공국들은 몽골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데, 이를 '몽골의 멍에(Mongol Yoke)'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동시에 민족적 단결과 저항 정신이 싹트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지혜와 용기:**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도 루스인들은 서쪽으로부터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스웨덴과 독일 튜턴 기사단이 발트해 연안으로 진출하여 루스 영토를 침략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때 노브고로드 공작 알렉산드르 넵스키(Alexander Nevsky, 1221-1263)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 **네바 강 전투 (1240년):** 스웨덴군이 네바 강 하구로 침입하자,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소수의 병력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스웨덴군을 격퇴했습니다. 이 승리로 그는 '넵스키(네바의)'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 **얼음 위의 전투 (1242년):** 독일 튜턴 기사단이 얼어붙은 추드스코예 호수를 건너 침략해오자, 넵스키는 기사단의 중장갑 기병대가 얼음판 위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용했습니다. 그는 병력을 호수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기사단이 중앙으로 진격해 들어오자 양 측면에서 포위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튜턴 기사단의 무거운 갑옷과 말들은 얇아진 얼음을 깨고 물에 빠져 익사하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루스군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몽골과의 정면 대결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현명하게 몽골의 권위를 인정하는 한편, 서방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루스 땅을 지켜냄으로써 러시아 민족의 수호자로 추앙받게 됩니다.

**쿨리코보 전투 (1380년) – 몽골 멍에를 흔들다:** 14세기에 접어들면서 모스크바 공국은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모스크바 공작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y Donskoy, 1350-1389)는 몽골 지배에 저항하려는 루스 공국들의 연합을 이끌었습니다. 1380년, 돈 강 유역의 쿨리코보 평원에서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연합군과 몽골-타타르 군대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에서 루스 연합군은 몽골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쿨리코보 전투는 몽골의 멍에를 완전히 벗어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몽골 지배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루스인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독립의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이후 '돈스코이(돈 강의)'라는 별칭을 얻으며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우그라 강 대치 (1480년) – 멍에의 종식:** 쿨리코보 전투 이후에도 몽골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 공국은 꾸준히 세력을 확장했고, 이반 3세(Ivan III, 1440-1505)에 이르러서는 명실상부한 루스의 중심 세력이 되었습니다. 1480년, 이반 3세는 몽골-타타르 군대가 우그라 강을 건너 침입해오자,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양측은 몇 주 동안 대치했지만, 몽골군은 결국 전투 없이 퇴각했습니다. 이 '우그라 강 대치'는 몽골의 멍에가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선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고,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통일 러시아 국가가 탄생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 **3. 제국의 기틀을 다지다 – 차르 시대의 군사력 (16세기 - 18세기)**

몽골의 멍에에서 벗어난 모스크바 대공국은 '차르(Tsar)'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는 러시아가 광활한 영토를 확장하고, 유럽의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을 구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반 4세(뇌제)의 군사 개혁 (16세기):** '뇌제(Grozny)'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이반 4세(Ivan IV, 1530-1584)는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차르 칭호를 사용하며 강력한 전제 군주정을 확립했습니다. 그는 군사력 강화에도 힘썼는데, 특히 '스트렐치(Streltsy)'라는 상비군을 창설한 것이 중요합니다. 스트렐치는 소총으로 무장하고 도시 요새 수비와 국경 방어에 투입되었으며, 차르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군사력이었습니다. 이반 4세는 스트렐치를 이끌고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을 정복하여 러시아의 영토를 동쪽으로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혼란 시대(Time of Troubles)의 극복:** 17세기 초, 러시아는 왕위 계승 문제와 귀족들의 권력 다툼, 외세의 개입이 겹치면서 '혼란 시대(Time of Troubles)'라는 극심한 내전을 겪었습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스웨덴이 러시아 영토를 침략하고 모스크바까지 점령하는 위기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 민족적 단결의 힘이 발휘되었습니다.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상인 쿠즈마 미닌(Kuzma Minin)과 드미트리 포자르스키(Dmitry Pozharsky) 공작은 의용군을 조직하여 외세에 맞서 싸웠고, 1612년 모스크바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의 활약은 러시아 민족에게 조국 수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으며, 이후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의 군사 혁명 (18세기 초):** 러시아 군사사에 있어 가장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은 바로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1725)입니다. 그는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유럽을 여행하며 선진 문물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 **상비군 창설 및 징병제 도입:**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의 사병 중심이었던 군사 체계를 해체하고, 서유럽식의 정규 상비군을 창설했습니다. 또한, 농노들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서 병사를 징집하는 징병제를 도입하여 대규모 군사력을 확보했습니다.
* **해군 건설:** 바다로의 진출을 염원했던 그는 러시아에 현대적인 해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규모 함선 건조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직접 조선 기술을 배우고, 유럽의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발트해와 흑해에 강력한 함대를 건설했습니다.
* **군사 학교 설립:** 장교 양성을 위해 포병 학교, 공병 학교 등 전문 군사 학교를 설립하여 군대의 전문성을 높였습니다.
* **대북방 전쟁과 폴타바 전투 (1700-1721):** 표트르 대제의 군사 개혁은 스웨덴과의 대북방 전쟁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특히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스웨덴의 칼 12세가 이끄는 정예군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러시아가 발트해로 진출하고 유럽 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러시아는 명실상부한 유럽의 강대국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 시대의 군사력 (18세기 후반):** 표트르 대제의 뒤를 이어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 1729-1796)는 러시아의 군사력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그녀는 유능한 장군들을 등용하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며, 흑해 연안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시기에 러시아는 흑해 함대를 건설하고, 크림 반도를 합병하는 등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제국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

### **4. 조국 수호의 위대한 서사 – 나폴레옹 전쟁 (19세기 초)**

19세기 초, 유럽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거대한 제국의 그림자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 대부분을 정복하고 러시아마저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려 했습니다. 그리고 1812년,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국 수호 전쟁 중 하나가 시작됩니다.

**1812년 조국 전쟁의 발발:**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60만 명에 달하는 '대군(Grande Armée)'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공했습니다. 이는 당시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정군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압도적인 병력 차이로 인해 정면 대결을 피하고, 미하일 쿠투조프(Mikhail Kutuzov, 1745-1813)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초토화 작전(Scorched Earth Policy)'을 펼쳤습니다. 이는 적군에게 보급품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식량과 자원을 불태우고 파괴하는 잔혹하지만 효과적인 전략이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 (1812년 9월):** 모스크바 근교 보로디노에서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의 대군과 결전을 벌였습니다. 이 전투는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단일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냈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의 진격을 늦추고 그의 군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쿠투조프는 병력 보존을 위해 모스크바를 포기하고 퇴각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모스크바 화재와 나폴레옹의 퇴각:**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 그는 텅 빈 도시와 함께 거대한 화재에 직면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수도를 스스로 불태워 적군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보내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항복을 기다렸지만, 황제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이 다가오고 보급선이 끊기자, 나폴레옹은 결국 퇴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겨울과 추격전:** 나폴레옹의 대군은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과 끊임없는 러시아군의 추격에 시달리며 처참하게 궤멸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쓰러졌고, 러시아군과 민중의 게릴라 공격에 희생되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극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러시아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1812년 조국 전쟁은 러시아인들에게 민족적 단결과 조국 수호의 위대한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 혹독한 겨울,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굴의 저항 정신이 세계 최강의 군대였던 나폴레옹의 대군을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이 승리는 러시아가 유럽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러시아인들의 가슴속에 깊은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

### **5. 격동의 시대, 변화와 도전 (19세기 중반 - 20세기 초)**

1812년의 영광 이후, 러시아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국내외적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군사 기술의 발전과 세계 정세의 변화 속에서 러시아 군사력은 때로는 빛나는 승리를, 때로는 뼈아픈 패배를 경험하며 변화를 모색해야 했습니다.

**크림 전쟁 (1853-1856):** 러시아는 흑해를 통해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과 서유럽 강대국들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결국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 사르데냐 왕국 연합군과 크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낙후된 군사 기술과 보급 체계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특히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러시아군의 용맹함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된 서구 군사력과의 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크림 전쟁의 패배는 러시아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군사 개혁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러일 전쟁 (1904-1905):**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러시아는 극동 지역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며 일본과 충돌했습니다. 만주와 한반도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은 결국 러일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발트해 함대가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에 전멸당하는 등 뼈아픈 패배를 겪었습니다. 러일 전쟁의 패배는 러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국내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켜 1905년 혁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제정 러시아의 군사적, 정치적 약점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1914-1918):** 20세기 초, 유럽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러시아 역시 동맹국인 프랑스, 영국과 함께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에 맞서 참전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전례 없는 규모의 총력전이었으며, 러시아는 동부 전선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브루실로프 공세와 같은 일부 성공적인 작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러시아군은 서방 연합군에 비해 장비와 보급 면에서 열악했고, 계속되는 패전과 막대한 인명 피해는 러시아 사회에 깊은 피로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결국 전쟁의 장기화와 국내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차르 체제에 대한 불만은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으로 이어져 제정 러시아가 붕괴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러시아에게 군사적 도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거대한 격변기였습니다.

---

### **6. 조국을 지킨 위대한 전쟁 – 제2차 세계 대전 (위대한 조국 전쟁, 1941-1945)**

러시아 군사사의 정점이자 가장 비극적이고 동시에 가장 영웅적인 시기는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러시아어로 '위대한 조국 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이라고 불리는 시기입니다. 이 전쟁은 러시아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민족적 단결과 불굴의 정신으로 조국을 수호해낸 위대한 승리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독일의 침공과 전면전:**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은 '바르바로사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을 기습 침공했습니다. 독일군은 엄청난 속도로 소련 영토 깊숙이 진격하여 수백만 명의 소련군을 포위하고 섬멸했습니다. 수도 모스크바는 물론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등 주요 도시들이 독일군의 포위 공격을 받았습니다. 초기 소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민족적 단결과 결사적인 저항:** 이 엄청난 위기 앞에서 소련의 모든 민족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하나로 뭉쳤습니다. 공장 노동자들은 밤낮없이 무기를 생산했고, 농민들은 식량을 공급했으며, 수많은 남녀노소가 자원하여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파르티잔(유격대)들은 독일군 점령지 후방에서 끊임없이 저항하며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8월 - 1943년 2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환점이 된 전투는 바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입니다. 볼가 강변의 도시 스탈린그라드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으며, 도시 이름 때문에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했고, 소련군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건물 하나하나, 거리 하나하나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결국 독일 제6군을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리는 독일군의 동부 전선 진격을 완전히 꺾었으며, 전 세계에 소련의 승리 가능성을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레닌그라드 포위전 (1941년 9월 - 1944년 1월):**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참혹한 포위전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군은 약 900일 동안 레닌그라드를 포위하여 외부로부터의 보급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끊임없는 포격 속에서 고통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불굴의 정신으로 도시를 지켜냈습니다. '생명의 길(Road of Life)'이라고 불리는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 위로 보급품을 운반하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포위전은 소련 민중의 인내와 용기, 그리고 희생 정신을 상징하는 비극적이면서도 영웅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쿠르스크 전투 (1943년 7월):** 스탈린그라드 패배 이후 독일군은 대규모 공세로 전세를 역전시키려 했습니다. 1943년 여름, 쿠르스크 지역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이 벌어졌습니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공격을 예측하고 깊은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치열한 전투 끝에 독일군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쿠르스크 전투의 승리는 소련이 동부 전선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독일군이 수세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승리와 재건:** 소련군은 이후 독일군을 서쪽으로 계속 밀어붙이며 점령지를 해방하고, 결국 베를린까지 진격했습니다. 위대한 조국 전쟁은 1

#러시아 #역사 #군사사 #러시아문화 #러시아역사 #러시아여행 #역사 #@C202511041705@


New!!

러시아(CIS) 문화/역사

TITLE NAME DATE
우즈베키스탄 음식 이야기: 안전하고 맛있는 약속, 식품 인증 [0]
학습M
2025.11.04
**1. 뿌리 깊은 용맹함 – 초기 루스 (9세기 - 13세기)** [0]
학습M
2025.11.04
역사의 심장부를 탐험하는 나침반: 키르기스스탄 역사 연구 방법론 [0]
학습M
2025.11.04
**1. 지도가 없던 시절의 '마음속 지도'와 초기 루시** [0]
학습M
2025.11.04
타지키스탄 음악, 디지털 시대를 만나다: 음악 소프트웨어 이야기 [0]
학습M
2025.11.04
러시아 예술 저널리즘: 예술과 사회를 잇는 다리 [0]
학습M
2025.11.04
1. 몰도바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교통편 완벽 가이드 [0]
학습M
2025.11.04
1. 러시아의 심신 정화 의식: 바냐 (Баня) [0]
학습M
2025.11.04
**아르메니아의 역사 기록물: 시간을 건너온 언어와 지혜의 보고** [0]
학습M
2025.11.04
**1. 흙과 불의 마법, 도자예술이란?** [0]
학습M
2025.11.04
러시아의 문화 자원봉사: 마음을 잇고 유산을 지키는 따뜻한 손길 [0]
학습M
2025.11.04
**아제르바이잔 패션 커뮤니티: 전통의 실타래와 현대의 직조** [0]
학습M
2025.11.04
투르크메니스탄 패션 박물관: 실크와 은이 엮어낸 삶의 이야기 [0]
학습M
2025.11.03
러시아의 문화재 보존: 시간의 흔적을 지키는 숭고한 노력 [0]
학습M
2025.11.03
초원의 용맹한 심장: 카자흐스탄의 군사사 [0]
학습M
2025.11.03

한러부부모임